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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모든 것이 넘치는 세상에서끄적이는 생각들/좋은 글귀 2014. 11. 7. 19:40
나의 스승은 이른 저녁 불을 켜지 않았다. 다 어둡고 난 다음이 되어서야, 이야기가 끝이 났을 때 불을 켜곤 하였다. 아주 가끔은 “아이쿠, 내 정신 좀 봐”라고 하시며 자리에서 일어나 불을 켜셨지만 그것은 손님인 나를 의식해서이고 영동이고, 양평이고 스승의 댁을 찾았을 때 당신이 혼자 계시는 저녁 무렵, 거의 불을 켜지 않으시는 걸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아주 어두워지는 시간까지 바깥을 향하여 앉은 채로 이야기를 하다가 특별한 인기척이 있어야 불을 켰던 때가 많았다. 고 최하림 시인의 이야기다. 불을 켜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거나, 불을 켜지 않은 채 가만히 사위가 어스레해지는 바깥에 눈길을 주고 있으면 다가오는 무언가가 있다. 알지 못할 것이기도 하려니와 알 것만 같은 그 무언가이기도 한 것이 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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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아트 정보 /영화 2014. 11. 2. 16:24
할머니가 주워온 누군가의 교과서, 헌책들 속의 세상이 전부였던 조제가 츠네오(츠마부키 사토시)를 만나 세상 밖으로 걸음을 떼는 성장 이야기. 누구에게도 도움받길 원하지 않았던 조제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가장 무서운 걸 보고 싶었다"며 츠네오의 손을 잡고 동물원의 호랑이를 본다. 물고기가 처음 바다를 만난 듯 세상을 유영하던 조제는 "길 잃은 조개껍질처럼 혼자 깊은 해저에서 굴러다니"더라도 괜찮다는 말로 이별의 순간을 준비한다. "언젠간 그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올 거야. 베르나르는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우린 또다시 고독해지고, 모든 게 다 그래. 그냥 흘러간 1년의 세월이 있을 뿐이지." "너는 주제를 알아야지. 너는 몸이 불편하잖아.몸도 불편한데 조심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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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욕망에 대한 그리움끄적이는 생각들/좋은 글귀 2014. 11. 1. 21:37
[한겨레]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 기형도, 살림, 1990 “가을의 저녁은 너무 빈곤하다…가을은 약탈자”(87쪽)라던 기형도의 단상이 해질 녘 집을 나서는 나를 위로한다. 기형도(1960~1989). 그는 스물두 살에 백혈병에 걸렸고 그로부터 7년 후에 세상을 떠났다. 29년의 삶. 이 책은 그가 사망한 지 일 년 만에 고인이 쓴 여행기, 일기, 편지, 단상, 소설, 서평, 기사를 묶은 책이다. 김현이 제목을 정한 유고 시집 과 전집은 지금도 꾸준히 읽히고 있지만 이 책은 24년 전 ‘고전’이다. 내게 ‘희망’의 이미지는 상술, 무임승차, 불신이 느껴지는 위로, 네온사인 십자가 등이다. 문자 자체로도 희망(希望)은 좋은 의미가 아니다. 기형도는 간단히 썼다. “희망이란 말 그대로 욕망에 대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