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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리뷰/글귀] 박민규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아트 정보 /책 2014. 12. 17. 23:41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2010년인가, 이 책을 처음으로 읽었을 때가. 박민규 소설 모두를 읽은 건 아니지만, 카스테라 더블 등등... 은 이 책만큼의 감동과 부르르르르~~~ 떨림을 주지는 않았었다.


    여전히 다시 읽어도 최고일 뿐만 아니라, 문장 한 올 한 올, 단어 한 줌 한 줌을 다시 마음에 새기게 하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요즘은 겨울이라 그런가 ㅠ_ㅠ 감성 폭발...

    겨울하면 '파반느'고, 눈 오는 겨울 풍경하면 '파반느'다.. 그 만큼 이 책은 포근 포근하게 눈이 쌓이는 겨울에 딱 어울리는 현대소설!


    이별한 사람,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 앞으로 사랑을 할 사람이라면.. 꼭 읽어봐야만 하는 책!

    그러니까 누구나 읽어도 좋은 책이다.




    역시나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해야 할 당신을 위해


     

    모든 사랑은 오해다. 그를 사랑한다는 오해, 그는 이렇게 다르다는 오해, 그녀는 이런 여자란 오해, 그에겐 내가 전부란 오해, 그의 모든 걸 이해한다는 오해, 그녀가 더없이 아름답다는 오해, 그는 결코 변하지 않을 거란 오해, 그에게게 내가 필요할 거란 오해, 그가 지금 외로울 거란 오해, 그런 그녀를 영원히 사랑할 거라는 오해... 그런 사실을 모른 채


    사랑을 이룬 이들은 어쨌든 서로를 좋은 쪽으로 이해한 사람들이라고, 스무 살의 나는 생각했었다. 결국 내게 주어진 행운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었다.그런 서로의 이해가, 오해였음을 깨닫지 않아도 좋았다는 것... 해서 고스란히 서로가 이해한 서로를 영원히 간직할 수 있었다는 것... 아무런 내색 없이, 마음 놓고 그녀가 울 수 있도록 나는 스스로의 마음을 그녀의 눈물 밑에 펼쳐 주었다. 따뜻한 벽난로를 등지고서도, 해서 내 마음은 한 장의 손수건처럼 자꾸만 젖어들었다. 젖고, 젖었으며....내가 젖을수록 조금씩



    모르겠어... 하고 나는 중얼거렸다. 뭐가요? 지금 이 순간이 아쉬운 것인지... 아니면 아까운 것인지... 결국 지나가버릴 이 시간에 대해 그녀도 나도 판단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인간은 결국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을 맞이하고, 모든 것을 떠나보낸다고 나는 생각했다. 소리굽쇠의 다른 한 축처럼 그녀도 그 순간 비슷한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이었다. 



    인간의 안목은 그런 것이다. 죽음이 닥치기 전까지는, 누구도 그 사람에게 영혼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는다. 아, 그것이 사라졌구나. 사라져가는구나... 느낀 후에야 그 텅 빈 공백을 바라보며 비로소 중얼거릴 뿐이다. 실례지만



    종착역에 이를 때까지 기차에서 내리지 못하는 인간처럼, 인생의 어느 지점까지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삶의 일부가 있다는 사실을... 그 때는 알지 못했다.



    산다는 건 뭘까? 고양이의 똥을 치우듯 내가 뱉은 거짓말들을 머릿속에 추스르며... 인간은 결코 진실만으론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을, 나는 했었다.



    다만 누군가를 사랑해 온 인간의 마음은 오래 신은 운동화의 속처럼 닳고 해진 것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어떤 빨래로도 그것을 완전히 되돌리진 못한다... 변형되고, 흔적이 남은 채로... 그저 볕을 쬐거나 습기를 피해야만 한다고 나는 생각했었다.



    몰랐어? 모두 바보란 걸?


    좆밥들이지. 정말로 그런 오빠를 얻을 수 있는 언니들은 말이야, 또 그런 언니를 만날 수 있는 왕자들은 말이야... 서로에게 열광하지 않아. 왠지 알아? 시시하기 때문이지. 언제든 가질 수 있는 건 누구에게나 시시한 거니까. 뭐, 그래도 좋은 거야. 



    지갑이 가벼울수록 무거운 짐을 지는 것이 인간이구나, 늘어선 가로수를 바라보며 나는 베트남의 농부처럼 고개를 끄덕였었다.



    몰래, 아주 빠르게... 손으로 머리를 빗어 넘기는 그녀의 움직을 또렷이 느낄 수 있었다. 순간 붉어진 그녀의 얼굴과... 치마 근처의 제자리로 돌아가던 손... 돌아가서도 머뭇,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부끄러워하던 그녀의 손을 잊을 수 없다. 그런 느낌에 대해 한 마디 말도 하지 못하던 열아홉 살의 나와... 그녀를 잊을 수 없다. 세상이 멈춘 순간 왜 그런 것들은 보다 상세해지는지, 바람이 없는데도 무엇이 파르르 잠자리의 날개를 떨게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지구가 정지하기 전까지는,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을 것이다.



    이 포크를 봐. 앞에 세 개의 창이 있어. 하나는 동정이고 하나는 호의, 나머지 하나는 연민이야. 지금 너의 마음은 포크의 손잡이를 쥔 손과 같은 거지. 봐, 이렇게 찔렀을 때 그래서 모호해지는 거야. 과연 어떤 창이 맨 먼저 대상을 파고 들었는지... 호의냐 물으면 그것만은 아닌 거 같고, 동정이냐 물으면 그것도 아니란 거지. 뭐, 맞는 말이긴 해. 손잡이를 쥔 손으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상대도 마찬가지가 아닐 수 없어. 처음엔 어떤 창이 자신을 파고든 건지 모호해. 고통과 마찬가지로 감정이란 것 역시 통째로 전달되기 마련이지. 특히나 여자는 더 그래. 왜 그런지 모르면서도... 그래서 일단 전반적으로 좋거나 싫어지는 거야.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하나의 창을 더듬어보게 돼. 손잡이를 쥔 손은 여전히 그 무엇도 알 수가 없는 거지. 알아? 적어도 세 개의 창 중에서 하나는 사랑이어야 해.


    여자는 말이야. 다른 모든 창들을 녹여 그것을 하나의 창으로 만들고 싶어해. 단순하고 강렬한 하나의 창으로... 즉 <사랑>이란 창이지. 만약 그것이 다른 이름의 창임을 알게 되면 그 상처를 견디지 못하는 게 여자야. 



    나는 여전했지만 여전하지 않았고, 예전과 달리 누가 누구와 헤어졌대, 누가 누구를 버렸대... 주변의 속삭임에도 마음을 아파하는 인간이 되어 있었다. 사랑하는 누군가가 떠났다는 말은, 누군가의 몸 전체에 - 즉 손끝 발끝의 모세혈관에까지 뿌리를 내린 나무 하나를, 통째로 흔들어 뽑아버렸다는 말임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뿌리에 붙은 흙처럼


    딸려, 떨어져나가는 마음 같은 것... 무엇보다 나무가 서 있던 그 자리의 뻥 뚫린 구멍과... 텅 빈 화분처럼 껍데기만 남아 있는 누군가를 떠올리는 상상은... 생각만으로도 아프고, 참담한 것이었다. 그런 나무를 키워본 인간만이, 인생의 천문학적 손실과 이익에 대해 논할 자격이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그 믿음엔 변함이 없다.



    나는 생각했었다. 태양과 바다와 꽃들은 실은 언제나 이 세계에 머물러 있고, 우리에겐 그 사실을 망각하지 않을 테크닉이 필요할 뿐이었다. 



    그것이 인생이다. 어떤 인간도 돈 있어, 만으로는 스스로의 인생을 책임질 수 없으며 어떤 여자도 오빠, 나 오늘 이뻐?로 평생을 버틸 수 없다.



    인간은 참 우매해. 그 빛이 실은 자신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걸 모르니까. 하나의 전구를 터질 듯 밝히면 세상이 밝아진다고 생각하지. 실은 골고루 무수한 전구를 밝혀야만 세상이 밝아진다는 걸 몰라. 자신의 에너지를 몽땅 던져주고 자신은 줄곧 어둠 속에 묻혀 있지. 어둠 속에서 그들을 부러워하고... 또 자신의 주변은 어두우니까... 그들에게 몰표를 던져. 가난한 이들이 도리어 독재 정권에게 표를 주는 것도, 아니다 싶은 인간들이 스크린 속의 인간들에게 자신의 사랑을 헌납하는 것도 모두가 그 때문이야. 자신의 빛을... 그리고 서로의 빛을


    믿지 않기 때문이지, 기대하지 않고... 서로를 발견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야. 세상의 어둠은 결국 그런 서로서로의 어둠에서 시작돼. 바로 나 같은 인간 때문이지. 스스로의 필라멘트를 아예 빼버린 인간... 누구에게도 사랑을 주지 않는 인간... 그래서 난 불합격이야. 나에게 세상은 불 꺼진 전구들이 끝없이 박혀 있는 고장난 전광판과 같은 거야. 너랑은 다른 거지...



    아마도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겨울이었을 것이다. 무엇을 해줄까,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런 보잘것없는 기억의 편린조차도 더없이 눈부신 순은의 반짝임으로 떠오른다. 인생에 주어진 사랑의 시간은 왜 그토록 짧기만 한 것인가. 왜 인간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보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가. 왜 인간은, 자신이 기르는 개나 고양이만큼도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인가. 왜 인간은 지금 자신의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망각하는 것일까. 알 수 없다.



    인간의 골목... 그저 인생이란 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 불과한 인간들의 골목... 모든 인간은 투병 중이며,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누군가를 간호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아름다움과 추함의 차이는 그만큼 커, 왠지 알아? 아름다움이 그만큼 대단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그만큼 보잘것없기 때문이야. 보잘것없는 인간이므로 보이는 것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거야. 보잘것없는 인간일수록 보이기 위해, 보여지기 위해 세상을 사는 거라구.



    바로, 사랑이지.


    사랑은 상상력이야. 사랑이 당대의 현실이라고 생각해? 천만의 말씀이지. 누군가를 위하고,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누군가를 애타게 그리워하고... 그게 현실이라면 이곳은 천국이야. 개나 소나 수첩에 적어다니는 고린도 전서를 봐. 오래 참고 온유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그 짧은 문장에는 인간이 감내해야 할 모든 <손해>가 들어있어. 애당초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야.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그래서 실은, 누군가를 상상하는 일이야. 시시한 그 인간을, 곧 시시해질 한 인간을... 시간이 지나도 시시해지지 않게 미래, 상상해 주는 거야. 그리고 서로의 상상이 새로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희생해 가는 거야. 사랑받지 못하는 인간은 그래서 스스로를 견디지 못해. 시시해질 자신의 삶을 버틸 수 없기 때문이지. 신은 완전한 인간을 창조하지 않았어, 대신 완전해질 수 있는 상상력을 인간에게 주었지.



    깜빡이며 불을 밝히고 있던 <희망>이 생각난다. 그, 희망을 흔들며 지나가던 바람처럼 실은 그런 식으로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인생의 어떤 순간에도 인간은 머물 수 없음을, 하여 인생은 흐르는 강과 같다는 사실을 무렵의 우리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겨울이 끝나면 봄이 오고, 나는 막연히 우리의 청춘도 딸기밭과 같은 곳으로 달려가고 있다 생각했었다. 나와 함께 가지 않을래요? 난 딸기밭에 가는 중이에요. 실감 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머뭇거릴 일도 없죠. 딸기밭이여, 영원하리.



    인생은 매우 이상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인생이 힘든 것은 예습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나는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결국 길고 긴 이 이야기도 복습에 불과할 뿐이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지금의 나도 중얼거린다. 있는 힘을 다해 복습을 하는 이 순간에도 인생은 흐른다. 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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