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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망은 욕망에 대한 그리움
    끄적이는 생각들/좋은 글귀 2014. 11. 1. 21:37

    [한겨레]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기형도 산문집>, 기형도, 살림, 1990




    “가을의 저녁은 너무 빈곤하다…가을은 약탈자”(87쪽)라던 기형도의 단상이 해질 녘 집을 나서는 나를 위로한다. 기형도(1960~1989). 그는 스물두 살에 백혈병에 걸렸고 그로부터 7년 후에 세상을 떠났다. 29년의 삶. 이 책은 그가 사망한 지 일 년 만에 고인이 쓴 여행기, 일기, 편지, 단상, 소설, 서평, 기사를 묶은 책이다. 김현이 제목을 정한 유고 시집 <입속의 검은 잎>과 전집은 지금도 꾸준히 읽히고 있지만 이 책은 24년 전 ‘고전’이다.

    내게 ‘희망’의 이미지는 상술, 무임승차, 불신이 느껴지는 위로, 네온사인 십자가 등이다. 문자 자체로도 희망(希望)은 좋은 의미가 아니다. 기형도는 간단히 썼다. “희망이란 말 그대로 욕망에 대한 그리움 아닌가. 나는 모든 것이 권태롭다… 도대체 무엇이 더 남아있단 말인가… 시는 어쨌든 욕망이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지금 욕망이 사라졌다… 추악하고 덧없는 생존이다…”(19~21쪽) 3쪽을 내 맘대로 짜깁기한 것이니, 그의 생각을 왜곡한 것일 수도 있다.

    그는 희망을 부숴야 뭔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여행기는 “희망에 지칠 때까지 지치고 지쳐서 돌아오리라”였다. 흔히 회자되는 루쉰의 말도 희망에 대한 긍정이 아니다. “땅 위에 길이 없는 것”처럼 원래 희망도 없다는 얘기다. 많은 사람이 걸어 다니면 길이 만들어진다는 실행의 고단함을 강조한 말이다.

    희망은 삶에 대한 특정한 사고방식을 집약한다. 미래 지향, 긍정, 바람… 사람들은 이 말을 편애한다. 희망이 있어야만 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오히려 표현 그대로 생각하면 절망(切望)이 희망적이다. 절망은 바라는 것을 끊은 상태, 희망은 뭔가 바라는 상태. 무엇이 더 ‘희망적’인가?

    상처와 좌절은 객관적이지 않다. 기대에서 온다. 무엇인가를 바라는 상태. 소망, 원망(願望), 희망은 종교다. 바라지 말고 바라는 현실을 살면 된다. 희망은 필요 없다. 대중에게 희망을 제시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바쁜 이들은 주로 정치인과 종교인이다. 요즘은 지식인이나 사회운동가도 힐링이라는 이름의 희망을 말하는데 이건 진짜 절망적인 현상이다. 그들의 임무는 고통을 드러내고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그래야 할 사람들이 대중이 원하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불길한 징조다.

    희망은 바라는 것이므로 어차피 현재에는 없다. 내가 생각하는 ‘희망’의 문제는 두 가지다. 우리 사회는 희망이 없다. 맞다. 하지만 희망과 현실을 대립적으로 사고하기 때문에 이런 좌절이 오는 것 아닐까. 현실의 일부인 ‘어두운’ 현실을 드러내면 희망이 없어지는 것처럼 생각한다. “세월호는 이제 그만” 같은 논리가 대표적이다. 

    또 다른 문제는 바랄 망(望), 자체에 있다. 이것은 미래의 비전이다. 실천이 아닌 이미 도착한 마음의 상태다. 미래상이 현실과 멀어질수록 희망은 부정의를 미화하게 된다. 이때 사람들은 세월호 이슈를 회피하고 황우석 사태를 부정한다. 그리고 이를 기억하려는 사람들을 절망의 메신저로 취급한다.

    기형도가 살았던 1980년대에 비해 지금 사람들의 욕망은 하늘을 두 쪽 낼 만큼 강렬하다. 실현 가능성은 그 반대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죽을 만큼 노력하거나 노력해봤자 불가능한 일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시대의 희망은 통치 이데올로기에 가깝다. 대중은 ‘착해 보이는 말’, 희망으로 대응한다. 현실은 물질이고 희망은 생각이다. 현실을 변화시키는 것보다 ‘마음가짐’을 바꾸는 것이 쉽기 때문이다.

    정희진 여성학 강사
    희망과 현실의 간극이 클 때 우리는 절망한다. 절망에 대처하는 가장 위험한 방법은 희망이 인식이 되어 그 인식을 행동으로 옮길 때다. 나는 희망을 버리는 것이 치유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명절 인사처럼 “모든 이들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곳이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인 동시에 두려울 것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 ‘희망찬 인생’은 바라는 것이 없는 사람이다. 원하는 것이 있을 때 인간은 무엇인가의 볼모가 된다. 희망은 욕망의 포로를 부드럽고 아름답게 조종하는 벗어나기 어려운 권력이다. 

    정희진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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