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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에 빠진 싯다르타의 뼈아픈 깨달음
    아트 정보 /책 2014. 8. 13. 00:43

    모든 면에서 완벽해 보여 누구도 함부로 조언을 해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한번 괴로움에 빠지기 시작하면 남들보다 훨씬 오래, 깊게 앓는다. 주변에는 누구도 그보다 나은 지혜를 가진 사람이 없기 때문에 충고를 해줄 사람도 없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싯다르타>의 주인공이 바로 그렇다. 부모는 물론 최고의 벗 고빈다도, 심지어 당대 최고의 성인(聖人)이었던 고타마 싯다르타도 그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다. 싯다르타와 동명이인인 이 남자 주인공은 마침내 부모조차 버리고 구도자의 길을 떠난다. 수행자들의 공동체 속에서 온갖 명상과 단식을 계속하지만, 어떤 수행으로도 '아무리 버리려고 해도 버릴 수 없는 이 자아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풀어낼 수 없었다. 무려 28일 동안 단식을 해보기도 하고, 온갖 신비체험에도 몸을 던져보지만, 인생은 그저 끝나지 않는 고통일 뿐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는 마침내 환속하여 속세에 뛰어든다. 장안 최고의 기생 카말라를 찾아가 온갖 '사랑의 기술'을 배우기도 하고, 최고의 장사꾼에게 돈 버는 솜씨를 배우기도 하며, 도박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결핍을 아무리 채우고 또 채워도 위대한 깨달음의 길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는 괴로움을 못 이겨 마침내 강가로 도망쳐 목숨을 끊으려 한다. 그 순간 내면에서 주체할 수 없는 울림이 퍼져 나온다. 그것은 바로 '옴'이라는 소리였다. 세속의 싯다르타가 자살하려 할 때, 무의식의 싯다르타는 불현듯 '옴'이라는 신비의 소리를 타전하여 그를 구원해낸다. '옴'은 완전한 것, 완성을 뜻한다. 하지만 이 극적인 깨달음 이후에 싯다르타에게 또 한 번의 치명적인 위기가 찾아온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카말라가 싯다르타의 아이를 낳은 것이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아들이 태어나자 '라후라'(방해자)가 태어났다며 괴로워했다지만, 헤세의 싯다르타는 아들을 보는 순간 사랑에 빠진다. 헤세의 싯다르타에게 아들은 깨달음의 장애물이 아니라 그가 안다고 믿었지만 아직 깨닫지 못한 세상의 모든 것이었다. 지구에서는 영원히 볼 수 없는 달의 뒷면처럼, 사랑은 늘 바라보지만 알 수 없었던 세상의 숨은 이면이었다. 호의호식하며 자라난 아들은 아버지의 초라한 삶을 거부하고 뛰쳐나가 버린다. 싯다르타는 아들의 마음을 돌리려 쫓아가지만, 아들은 마치 잡상인을 대하듯 아버지를 내쳐버린다. 사랑 앞에선 발가벗은 거지가 되는 것만 같은 참혹한 아픔을 싯다르타는 처음으로 깨닫는다. 사랑 앞에서는 아무리 뼈아픈 굴욕도 참을 수밖에 없는 자기 영혼의 본래 생김새를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그는 자신의 가슴을 찢어발기는 아들을 통해, 참담한 기시감을 느낀다. 싯다르타는 자신이 아버지를 얼마나 고통스럽게 했는지를 깨닫는다. 출가하여 한 번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아직까지 기다리는 아버지의 슬픈 얼굴을 강물을 통해 바라본다. 그는 결코 보답받지 못하는 사랑을 통해, 전심전력으로 사랑해도 닿을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배운다. 세상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보였던 싯다르타가 몰랐던 단 하나, 그것은 사랑이었다. 사랑은 세상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모르면 세상 모든 것을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인 깨달음이었다. 사랑 따위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던 싯다르타, 오직 자신만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싯다르타가 자신을 가장 아프게 하는 존재를 사랑하게 된 순간, 깨달음은 비로소 완성된다. 나 아닌 존재를 나보다 더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 그게 바로 가장 나다운 나라는 사실은, 내 존재를 갈기갈기 찢는 고통을 통해서만 깨달을 수 있다.


    정여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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